욕망과 주관, 혐오와 배제의 시대
1 끝없는 욕망 - 돈이면 전부
21세기 대한민국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의 기준은 욕망이고, 가치를 재는 잣대는 각자의 주관이다. 내가 원하는 게 중요하고, 내 기준이 우선이다. 도덕이나 법 같은 건 필요할 때만 떠올린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고, 내가 불편하면 그만이다. 왜 굳이 내 앞의 누군가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까. ‘나’가 중요하고, ‘내 마음’이 더 중요한데 말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욕망을 충족하는 일은 무엇보다 앞선 가치처럼 보인다.내 욕망을 채울 수 있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면 권력이든 돈이든, 방법이 무엇이든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닮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이런 분위기는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아파트 가격이 몇 억 오르기를 바라며, 내 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를, 가능하다면 앞서가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니 집값을 올리기 위해 편법을 쓰고, 아이를 ‘엘리트’로 키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 과정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혹은 그런 경쟁을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란다. 어느 순간 그것은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2 안전, 나만의 안전
사람들은 무엇보다 ‘안전’하길 원한다. 안전이란 위험으로부터의 거리 두기다. 여기서 말하는 위험은 눈앞의 사고만이 아니라, 혹시 모를 불편함과 불안, 감정적인 상처까지 포함한다. 아픔도, 슬픔도, 분노도 가능하면 겪고 싶지 않다.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나의 세계’ 안에 들어오기 전에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이때의 안전은 종종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변한다. 나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은 위협이라기보다 귀찮은 존재가 되고, 자연스럽게 분리와 배제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 나를 자극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한 멀찍이 떨어져 있길 바란다. 수많은 ‘캐슬’과 ‘팰리스’라는 이름의 공간들이 생겨난 이유도 이런 마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3 지극한 주관에서 혐오와 배제로
오늘날 말하는 ‘주관’은 객관을 잃어버린, '지극한 주관', 곧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에 가깝다. 공통의 기준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내 마음이 기준'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주관과 주체성은 다르다. 주체성이란 자기 생각이 분명하되,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태도다. 그때그때 이익에 따라 생각을 바꾸거나, 남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객관이란 최소한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있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지극한 주관 속에는 오직 ‘나’만 있다. '내 마음인데, 네가 왜?'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된다. 상대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내 감정과 내 욕망이 언제나 먼저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끊어내면 되고, 경쟁 상대는 밀어내면 된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법으로 가거나, 때로는 범죄로까지 이어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죄에 대한 감각마저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법으로 모면하거나 비켜가고, 죗값보다 적은 죗값을 치르거나 죗값만 치르면 그만이니, 법망을 피해가거나, 치러야 할 책임만 지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는다. 폭력은 가벼워지고, 생명의 무게는 점점 희미해진다. 폭력이 난무하고 사람의 목숨은 아무렇지 않다. 책임을 지는 대신 회피하거나 떠넘기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3 혐오와 배제, 폭력과 조롱
혐오와 배제, 폭력과 조롱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욕망과 극단적인 주관이 만들어낸 결과다. 개인의 태도는 사회의 분위기가 되고, 사회는 다시 개인의 태도를 강화한다. 개인의 도덕성이 곧 사회의 도덕성으로 확대되고, 사회의 도덕성이 다시 개인의 도덕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악순환은 계속된다.
그래서 결국 다시 묻게 된다. '시대가 이러니 어쩔 수 없다'는 말 뒤에 숨기 전에, 나 역시 이 사회를 만들어온 한 사람이 아니었는지. 이 질문은 불편하고, 솔직히 괴롭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을 때 삶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새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