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삶그리고의미
[8] 잘 산다는 것, 그 철학적 의미
인간은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져야 한다.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살고 싶어하고 의미있게 살다 가고자 한다. 무엇보다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보람을 얻고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도덕도 좋고 욕망도 좋으나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사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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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져야 한다.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살고 싶어하고 의미있게 살다 가고자 한다. 무엇보다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보람을 얻고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도덕도 좋고 욕망도 좋으나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사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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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이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내가 이루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 일이다. 이 질문은 사소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정체성 및 인생의 방향성이라는 좀 더 중요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는 다르게 '어떻게 이룰 것인가?'와 관련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가치관 또는 인생관을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에 관한 방법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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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내가 사는 이 '세계'에 알고 싶어하고 이에 대해 배운다. 그것은 내가 사는 현실이기도 하고, 내가 만든 상상이기도 하며, 내게 주어진 특정 공간이기도 하다.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에 대한 조망'이다. 삶의 공간을 어떻게 조망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실제의 공간과 함께 인간에게 중요한 공간이 '인식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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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나'에 대해 알아야 할까. 이 질문은 참 뻔하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함의가 들어 있다. 하나는 '나'라는 사람이 어떠한 정체성을 갖느냐 하는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나'라는 사람이 살아가야 할 의미를 묻는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나'라는 사람이 왜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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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는 철학자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불렀다. 지혜로운 사람이 아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했던 이유는 ‘사랑’이 갖는 의미에 있다. 철학자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다. 내가 누구인지, 사는 게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죽어야 하는지,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정의란 무엇인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나와삶그리고의미
많은 사람들이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갖지만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이유는 철학과 일상과의 거리감 때문이다. 한 마디로 '뜬구름 잡는 소릴' 해댄다. 존재니 초월이니, 보편이니 실존이니, 이런 개념들은 어렵기도 하고 일상에서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 생소할 뿐이다. 철학은 철학자들이 평생에 걸쳐 구상해온 자기의 생각이나 주요 철학적 주제에 대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주장들을 가리킨다.
나와삶그리고의미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열 다섯 살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학기가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던 때였다. 도덕 교과서에 이런 말이 등장했다. 정확히 옮길 순 없지만 청소년이 되면 사람은 대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고. 그 순간부터였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과장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정말 그랬다!
나와삶그리고의미
어릴 때부터 나에겐 나를 휘감는 듯한 일종의 공허함이 존재했다. 마치 어떤 행성의 위성처럼 띠를 두른 듯 내 몸을 자전하는 그 정체 모를 무엇. 늘 그랬다. 누군가에게 설명할 길 없는 내가 나에 대해 느끼는 낯설음, 그리고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자각하는 나, 그 메울 수 없는 간극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건, 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도덕경
나누고자 한다면 독차지 하고자 서로 빼앗지만 않는다면 인간은 그 부와 풍요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노자가 물처럼 살라 한 것은, 무위를 행해야 한다 말한 것은 결국, 개개인이 그런 자세로 삶을 살아야만 이땅에 주어진, 개개인에게 주어진 부와 풍요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도에서이다. 그것이 곧 모든 존재를 이롭게 하려는 노자의 마음이다.
노자
노자의 말에 따르면,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지만 해롭게 하지는 않고, 현자의 도는 무언가를 하더라도 다투지 않는다. 이는 세상 모두를 위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좋은 마음을 가져야 좋은 마음이 돌아오듯 세상 모두를 위하는 그 마음이 결국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
도덕경
노자가 생각하는 이상국가이다. 다른 국가의 침입 없이,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서로를 억압하는 문명의 이기 없이, 사람을 불평등하게 만드는 제도나 재화 또는 그런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모든 이가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야말로 아름다운 곳이다.
도덕경
노자는 하늘이 착한 사람 편이라 말한다. 하늘마저 외면한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하늘은 치우침이 없다. 다시 말해, 공평무사. 그리하여 하늘은 선한 이들과 함께한다. 악한 이들은 공평무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불공평하니 공평무사한한 것만으로도 선한 이들의 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