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노자 도덕경 11장, 나의 쓰임이 세상의 쓰임 [번역 및 해설]
차(바퀴)를 소유하고, 사치품(그릇)을 소유하고, 집(방)을 소유했는데도 왜 사람들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할까. 사업을 하고 전문직에 종사해서 돈을 많이 버는데도 마음은 늘 불안할까. 이는 방향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목적 또는 가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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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바퀴)를 소유하고, 사치품(그릇)을 소유하고, 집(방)을 소유했는데도 왜 사람들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할까. 사업을 하고 전문직에 종사해서 돈을 많이 버는데도 마음은 늘 불안할까. 이는 방향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목적 또는 가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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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강하게 밀어부친다. 갓난아기처럼 온전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을지 묻는다. 백성을 아끼는 데에도 이처럼 할 수 있는지 묻는다. 현람에 자신의 내면을 비추듯 온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백성을 대할 수 있을지 묻는다. 약간의 이기심도 조금의 욕망도 없이 진정 백성이 잘 될 수 있는 마음인지 묻는다. 그 정도의 마음가짐이라야, 그 정도의 덕이라야 지도자의 자질이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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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모두가 적당한 때와 적당한 양을 구분할 줄 알면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겠으나,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고 멈출 줄 아는 지혜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 갖기 전에 더 나아가기 전에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감당할 수 있을지. 감당한다면 얼마나 가능할지. 거기에서 ‘적당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진 것마저 잃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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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유연하기 어려운 이유는 -도덕경에서 계속 등장하지만- 자기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난 이런 사람이야’ 또는 ‘난 상처받기 싫어’, ‘난 질 수 없어’, ‘내 말을 듣게 만들겠어’ 같은 마음들이 그것이다. 그래서 서로를 힘들게 만든다. 상대는 날 지배하기 위해, 난 상대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혹은 그 반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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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움이 없는 마음, 그것은 곧 좋은 바람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더 좋은 곳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을 짓고, 물건을 팔더라도 사는 사람이 그 물건을 소유해서 기분이 좋도록 하고,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란 믿음으로 하는 것, 바로 그런 자세, 그런 마음, 그런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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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여성은 부와 풍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현대 사회에서 홀대 받는 여성성과는 반대이다. 타로의 메이저카드 중 하나인 여황제의 이미지를 보면 울창한 숲과 콸콸 물이 넘치는 장소에서 평온하게 앉아있다. ‘현빈’의 이미지에 딱 어울린다. 여황제 역시 데메테르를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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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모든 존재는 더 나은 가치를 갖거나 더 나쁜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하늘과 땅(우주)은 인간을 마치 동식물 또는 무생물 대한다. 동물과 식물에 대한 인간의 기호가 있을 수는 있으나 생명이나 존재의 가치에 있어서 우위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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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은 도의 작용에 대한 내용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도란 ‘비어있음’을 가리킨다. 텅 빈 우주를 떠올려 보자. 그곳은 무한한 시공간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곳은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 무한한 에너지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고 느낄 수 없지만 그 어떤 형태로도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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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어떻게 하면 뺏어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문제의 원인이다. 그래서 노자는 탐욕을 경계한다. 모두가 불안에 떨며 서로를 믿지 못하고 경쟁에 치이다 보면, 삶이 결코 안정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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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그렇다. 난 이게 맞다 보는데, 상대는 아니라 말하고, 답이 있는 사실에서도 서로 어긋난 반응을 보이기도 하다. 그럴 땐 슬며시 내 주장을 내려놓는 아량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죽어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너무나 이해하기 어렵고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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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에 있어 중요한 가치인 비움도 고요함도 버림도 부드러움의 가치도 우리 사는 세상과 우주가 살만한 곳임을 긍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곧 노자가 말하는 도에 따르는 삶이고 덕을 기르는 일이며, 무위라는 삶의 방식이다. 그 부와 풍요의 세상이 당신 앞에 놓여있다. 이제 그 비밀의 문을 열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