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27장, 흔적 없는 행동과 허물 없는 말 [번역 및 해설]

자신의 좋은 행동과 말이 가져온 결과에 집착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좋은 행동도 좋은 말이 아닌 욕망이 깃든 행동이자 의도가 담긴 말이 된다. 순수하게 좋은 말과 행동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다. 좋은 행동을 하고자 할 때엔 흔적 없이 해야 하고 좋은 말을 할 때는 허물을 남겨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이런 의미이다.

노자 도덕경 27장 표지
노자 도덕경 27장 표지
'부와 풍요'로 읽는 노자 도덕경 번역 및 해설이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의도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브런치 '뽀시락'에 연재(2024년)한 것을 다시 정리하였다. 통상적인 번역에 의거하였고, '부와 풍요'라는 핵심어로 풀이하였다. 앞으로도 책과 블로그를 통해 더 나은 번역과 해설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본문

선행(좋은 행위)은 자취를 남기지 않고, 선언(좋은 말)은 허물을 남기지 않는다. 선산(좋은 계산)은 책략을 사용하지 않고, 선폐(잘 잠금)는 빗장으로 잠그지 않아도 열 수 없게 만들며, 선결(잘 묶음)은 끈으로 묶지 않아도 안 풀리게 흐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자는 항상 선함으로 사람을 구제하니 버려지는 사람이 없고, 항상 선함으로 사물을 구제하니 버려지는 사물이 없다. 이를 두고 습명(襲明, 지혜를 물려줌)이라 부른다.

결국, 선한 이는 선하지 못한 이의 스승이고 선하지 못한 이는 선한 이의 귀감이 된다. 그 스승이라고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 귀감이 된다고 받들지 않으며, 오히려 지혜를 큰 미혹이라 여기니 이를 가리켜 요묘(要妙, 오묘함의 극치)라 부른다.

원문

善行無轍迹. 善言無瑕讁. 善數不用籌策. 善閉無關楗而不可開. 善結無繩約而不可解. 是以聖人常善救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 故善人者不善人之師. 不善人者善人之資.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해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너는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너의 착한 행실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복음

노자는 좋은 행동은 자취를 남기지 않고 좋은 말은 허물을 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태복음에 나온 것처럼 좋은 일은 남모르게 하라는 의미이다. 떠벌리지 좀 말고. 그래야 복이 돌아온다고 한다. 또한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속담이 있듯 말에는 힘이 있어 허물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신기하게도 내가 내뱉은 말은 돌고 돌아 어떤 형태로든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잘 잠그고 잘 묶는다는 것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제대로, 원하는대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현자는 항상 좋은 바람으로 사람과 사물을 구한다. 26장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애초에 마음가짐이 다르다. 노자는 이런 마음가짐을 가리켜 ‘습명’이라 부른다. 몸에 배어 무슨 일을 하든 마음가짐에 변함이 없음을 가리킨다.

선하지 못한 이가 선한 이의 귀감이 되니

그렇지만 하나의 역설이 등장한다. 선인은 선하지 못한 이의 스승이고 선하지 못한 이는 선한 이의 귀감이 된다는 사실. 이는 공자의 말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의 좋은 점을 골라 그것을 따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의 좋지 않은 점을 골라 그것을 바로 잡아라. - <논어 술이>

스승이라 해서 귀하게 여길 것도, 귀감이 된다고 받들 일도 아니라는 말의 의미는 바로 이처럼 누구나 다른 누구에게 스승이 되고 귀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를 큰 미혹으로 여긴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지혜라 여겼던 것이 어느 순간 지혜로서의 역할을 못하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지혜라 굳게 믿었던 것이 지혜가 아닐 수도 있다.


도가, 비워서 채우는 삶의 미학 [책 소개]
노자와 장자를 중심으로 한 도가의 생각을 현대와의 접점에서 간결하게 풀어쓴 책이다. 도가의 생각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그 내용을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노자와 장자는 도가의 창시자이고 도가란 ‘도’를 통해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고 ‘도’에 따라 삶을 살고자 하는 학파를 의미한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 [책 소개]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철학을 소개하는 책이다. 공자, 묵자, 노자, 맹자, 장자, 순자, 이사, 상앙, 한비자, 등석자, 혜자(혜시), 공손룡자에 이르는 5개의 학파와 12명의 제자백가의 사상에 대한 내용이다. 5개의 학파는,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명가에 해당한다.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의 좋은 행동과 말이 가져온 결과에 집착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좋은 행동도 좋은 말이 아닌 욕망이 깃든 행동이자 의도가 담긴 말이 된다. 순수하게 좋은 말과 행동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다. 좋은 행동을 하고자 할 때엔 흔적 없이 해야 하고 좋은 말을 할 때는 허물을 남겨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이런 의미이다.

보살은 어떤 대상에 대한 집착 없이 보시한다. 형색에 대한 집착 없이 보시해야 하고,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대한 집착 없이 보시해야 한다. 보살은 어떤 대상이나 그에 대한 관념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보살이 대상에 대한 관념에 집착 없이 보시한다면 그 복덕은 헤아릴 수 없다. - <금강경>

노자는 이를 ‘요묘’라 부른다. 도덕경에 등장하는 개념 중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 이는 역설 중의 역설이란 의미로 이해해볼 수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던 신라의 원효대사가 간밤에 목이 말라 해골의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정작 자신이 진정 원하던 것을 찾다 자신이 너무 간과하거나 외면하던 곳에서 그 해답을 찾는 경우가 있다.

삶은 그 차체로 신비롭고 오묘하다. 그래서 ‘요묘(要妙)’.


노자 도덕경 완역(1-81장) 모음
와 풍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 인간 세상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것. 그렇지만 단 한 번도 골고루 나누어진 적 없던 것. 불평등의 근원이자 갈등의 시초. 그래서 노자는 말한다. 욕심을 버리고 서로 빼앗고자 다투지 말며 서로를 보듬어주고 안아주라고. 이미 이 세상은 부와 풍요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니, 제발 그만하라고. 멈추라고. 이것이 노자의 메시지이자 도덕경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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