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노자 도덕경 34장, 모든 곳에 차고 넘치니 [번역 및 해설]
노자의 삶의 방식엔 공짜가 있다. 노자는 무엇이든 나누어 주지만 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그것으로 다른 누군가를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부와 풍요가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으니 욕심 없는 ‘작음’으로 ‘큼’을 이룬다. 끝내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으니 더 큰 것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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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삶의 방식엔 공짜가 있다. 노자는 무엇이든 나누어 주지만 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그것으로 다른 누군가를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부와 풍요가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으니 욕심 없는 ‘작음’으로 ‘큼’을 이룬다. 끝내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으니 더 큰 것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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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신에 대해 알고 잘 돌볼 줄 안다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면, 그것에 매진하거나 몰두할 수 있다. 그것이 곧 자기의 길이므로 의심을 할 이유도 다른 길을 찾아 방황할 까닭도 없다. 아주 가볍게 표현하면, 사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물질의 형태를 달고 태어난 영혼의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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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지나치면 위태로워진다. 과도함을 버리라는 노자의 목소리는 여기에도 등장한다. 적당함을 유지할 줄 알아야 자신을 보존할 줄 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왕이 된다면, 모든 이들이 저절로 그를 따르게 될 것이니 삶이 한층 더 높은 상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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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병기는 상스럽지 못한 것이므로 도를 따르는 이는 이를 꺼린다고 말한다. 30장에 이어 전쟁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힌다. 왼쪽 자리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과거 임금의 앉은 자리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임금은 북쪽을 뒤로 하고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임금의 자리에서 오른쪽이 곧 신하들의 위치에서는 왼쪽이 되고, 왼쪽은 오른쪽이 된다. 그래서 중요한 관직일수록 왼쪽 줄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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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풍요'로 읽는 노자 도덕경 번역 및 해설이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의도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브런치 '뽀시락'에 연재(2024년)한 것을 다시 정리하였다. 통상적인 번역에 의거하였고, '부와 풍요'라는 핵심어로 풀이하였다. 앞으로도 책과 블로그를 통해 더 나은 번역과 해설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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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이유 중 하나로 처세술을 꼽을 수 있다. 얻고자 하면 잃을 것이고 나아가고자 하면 물러나야 할 것이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이런 처세술의 기본이 되는 생각들이 노자의 도덕경을 원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과 같은 병법서도 이러한 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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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노자는 가장 큰 마름질은 일부러 나누거나 쪼개지 않는다 말했다. 하늘의 때를 기다려, 자연스레 모든 것이 운동과 변화를 시작할 때에 맞춰 일을 벌인다. 그리하여 현자는 힘들이지 않고 무리없이 세상을 이끌어나간다. 그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 역시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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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좋은 행동과 말이 가져온 결과에 집착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좋은 행동도 좋은 말이 아닌 욕망이 깃든 행동이자 의도가 담긴 말이 된다. 순수하게 좋은 말과 행동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다. 좋은 행동을 하고자 할 때엔 흔적 없이 해야 하고 좋은 말을 할 때는 허물을 남겨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이런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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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이고, 잔잔함은 섣부름의 임금이라 말한다. 말이나 수레에 실은 짐은 곧 자신이 지켜야 할 무엇이다. 온갖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할일을 다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잠깐의 유혹에 흔들려 자신의 책무를 잊거나 책무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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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이 무한한 차원의 내용을 유한한 차원의 세계로 끌고온다. 바로 ‘왕관의 무게’, 곧 왕의 권한과 책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왕은 땅만큼이나 하늘 만큼이나 도 만큼이나 큰 자리이니 그에 마땅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의도이다. 그것이 천명이다. 왕이 될 운명 또는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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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말하는 것은 과도함에 있다. 너무 지나치면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일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겸허해야 한다. 한참 많은 돈을 벌고 전국에 명성을 떨치던 사람이 너무 으스대거나 들뜬 마음으로 큰 실수를 저질러 하루아침에 망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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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인간의 삶이라고 자연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회오리바람이나 소나기와 같이 가끔 일어나는 자연 현상은 언젠가 멈추거나 사라진다. 그러하니 혹여 인생에 벌어지는 큰일이라고 해서 영원히 지속되진 않을 것이라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삶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