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노자 도덕경 22장, 삶의 조화와 균형 [번역 및 해설]
현자는 스스로 드러내지도, 옳다 하지도, 떠벌리지도 뽐내지도 않는다. 그것은 조화와 균형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나치면 넘치고 넘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항상 경계하며 조심스레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안의 갈등이 없으니 세상과 다툼이 없다. 이러한 노자의 생각은 처세술의 원형이 되어 후대로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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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는 스스로 드러내지도, 옳다 하지도, 떠벌리지도 뽐내지도 않는다. 그것은 조화와 균형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나치면 넘치고 넘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항상 경계하며 조심스레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안의 갈등이 없으니 세상과 다툼이 없다. 이러한 노자의 생각은 처세술의 원형이 되어 후대로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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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아니어도 신기가 없다 하더라도 어떤 한 사람이 큰 덕을 지니면 자연스레 정신적 힘이 생긴다. 세상을 아울러 보고 깊게 보는 힘, 이를 일러 ‘통찰’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그 큰 덕은 어떻게 생길까. 노자의 답은 도에 따르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도에 따르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물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하고 그것을 즐긴 사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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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가치관이 팽배한 곳에서는 선이나 악도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 부패가 만연한 곳에서는 부패하지 않은 사람이 문제이고 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생활도 그렇다. 많은 이들이 아마 ‘미친 척’ 아니면 ‘미쳐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불합리한 세상을 도저히 견딜 순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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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통치자들은 교묘하다. 나쁜 통치자는 백성을 통치하기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백성들 스스로 자신들이 옳다 믿는 것을 행하도록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이 원하는 것을 백성들 스스로 원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프레임이자 정치적 가스라이팅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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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란 큰 원칙 또는 기본 상식이라 볼 수 있다. 원칙과 상식이 무너지니 인의와 같은 규범이나 양심 따위를 강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규범이나 양심마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가 문제이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면 문제가 생겨도 그에 따라 처리하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회적 합의도 쉽고 잘잘못을 가리기도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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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시민들은 진정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 해도 그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도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시민들을 업신 여기고 그들이 반발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두렵게 만들 지도자가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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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성이란 변하지 않는, 영원함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법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자는 모든 것이 각자의 자리로 회귀한다는 그 항상성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 보았다. 밝다는 것은 이치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삶과 존재의 덧없음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경영하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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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방통한 사람은 고양이를 닮은 사람이다. 머뭇거리고 멍설이는 모습이 그렇다. 그는 섬세하면서도 융통성 있는 사람이다. 항상 조심스럽고 배려하며 넉넉하고 아량이 넓다. 진지하고 공손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지만 소탈하고 농담 정도는 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풀림은 얼음이 녹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스르륵. 화가 나도 금방 푸는 그런 사람. 꿍하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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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할지도 모르고, 왜 살아야할지 모르나,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고, 살아야 하니 살 수밖에 없지만, 더 나은 삶, 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마음이다. 노자의 말대로 부여잡을 것 하나 없는 이 우주에도 ‘도의 실마리’는 있다 하니, 그러니 조금은 안심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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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애나 모욕도 마찬가지이다. 온갖 굴욕을 겪다가도 어느날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가 있기도 하고, 정승의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말처럼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노자는 묻고 있다. 권력을 그렇게 볼 수 있는지를. 아무것도 아닌 것마냥 대할 수 있는지를. 얻어도 잃어도 담담할 수 있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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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과 중독은 큰 차이가 있다. 둘 다 본인의 선택이지만 본인의 의지로 그것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에 있다. 몰입은 자발적이나 중독은 의존적이다. 무엇보다 생산적인 일이냐의 차이도 있다. 몰입은 생산적이지만 중독은 소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독은 자신을 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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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바퀴)를 소유하고, 사치품(그릇)을 소유하고, 집(방)을 소유했는데도 왜 사람들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할까. 사업을 하고 전문직에 종사해서 돈을 많이 버는데도 마음은 늘 불안할까. 이는 방향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목적 또는 가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