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19장, 일상과 시민이 만드는 세상 [번역 및 해설]
나쁜 통치자들은 교묘하다. 나쁜 통치자는 백성을 통치하기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백성들 스스로 자신들이 옳다 믿는 것을 행하도록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이 원하는 것을 백성들 스스로 원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프레임이자 정치적 가스라이팅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실현한다.
'부와 풍요'로 읽는 노자 도덕경 번역 및 해설이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의도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통상적인 번역에 의거하였고, '부와 풍요'라는 핵심어로 풀이하였다. 앞으로도 책과 블로그를 통해 더 나은 번역과 해설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본문
성스러움을 내던지고 지혜를 버린다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가 될 것이고, 인을 내던지고 의를 버린다면 백성들이 효도와 자애를 회복할 것이며, 교묘함을 내던지고 이익을 버린다면 도적떼도 사라질 것이다.
이 세 가지는 표준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그리하니 다음의 기준을 따르라.
“본바탕을 드러내고 원형의 본질을 간직하라. 자아(에고)를 따르지 말고 욕심을 줄여라.”
원문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此三者以爲文不.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해설
고귀함이나 성스러움을 가벼이 여겨라
고귀함이나 성스러움은 고대로부터 일반 백성과의 차별을 두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유럽의 중세를 보더라도 왕이나 귀족의 고귀함(잔치나 벌이고 부패를 저지르는 등의 전혀 고귀하지 않음에도) 또는 종교의 성스러움(잘못된 종교인이 저지르는 불건전한 행태와 같이 전혀 성스럽지 않음에도)을 강조하며 다른 계급과의 거리를 두었다.
인이나 의도 마찬가지이다. 대체로 고대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에게는 도덕적 관대함을,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에게는 도덕적 엄격함을 적용한 경향이 있다. 그들은 비록 그렇게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그들이 다스리는 백성들에게는 그러한 것들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일종의 자체 검열 기준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쁜 통치자들은 교묘하다. 나쁜 통치자는 백성을 통치하기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백성들 스스로 자신들이 옳다 믿는 것을 행하도록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이 원하는 것을 백성들 스스로 원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프레임이자 정치적 가스라이팅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실현한다.
반면, 좋은 통치자는 반대로 백성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자유를 준다. 언뜻 보기엔 매우 혼란스러워 보이나 그 혼란스러움이야말로 어쩌면 자유를 가진 시민들이 사는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 노자가 "인을 내던지고 의를 버린다면 백성들이 효도와 자애를 회복할 것이며, 교묘함을 내던지고 이익을 버린다면 도적떼도 사라질 것"이라 말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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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마음을 간직하고 자신의 길을 가기
노자는 규제가 많아지고 검열이 복잡해질수록 백성의 삶은 더욱 고달파지기에, 그보다는 단순하게 접근해야 하다고 강조한다. "본바탕을 드러내고 원형의 본질을 간직하라." 라는 말의 의미이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는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원칙과 상식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아(에고)를 따르지 말고 욕심을 줄여라.” 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아'란 자기중심적 마음을 가리킨다. 남보다 앞서고자 하고 남을 통제하려는 그런 마음을 버리고 자기만을 위하는 욕심을 줄인다면야 사람 사는 세상에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이 19장에서 언급했던 대도의 길이기도 하다.
노자의 정치는 뭔가 덧대려 하지 말고 백성들이 본마음(고요한 마음)을 간직하게 만들고, 욕심에 따라 들뜨거나 의기소침하여 가라앉는 대신 담담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간섭하지 않으면 모두가 알아서 잘 살 것이라는 생각이 통치에 대한 노자의 기본 전제이다. 이것이 곧 정치에 있어서의 노자의 '무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