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64장, 자연스럽게 본질과 본성에 따라 [번역 및 해설]

노자는 무언가에 개입하거나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잘났다고 위에 서서 모두를 지배하려 하거나, 남을 굴복시키려 하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은 지배욕이다. 현자는 지배욕이 없다. 현자의 최종 목표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가진 자연스러움의 회복에 있다. 자연스러움이란 곧 본성이자 본질이다. 곧 각자가 각자가 지닌 결대로 사는 일.

노자 도덕경 64장, 자연스럽게 본질과 본성에 따라 [번역 및 해설]
노자 도덕경 64장 표지
'부와 풍요'로 읽는 노자 도덕경 번역 및 해설이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의도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브런치 '뽀시락'에 연재(2024년)한 것을 다시 정리하였다. 통상적인 번역에 의거하였고, '부와 풍요'라는 핵심어로 풀이하였다. 앞으로도 책과 블로그를 통해 더 나은 번역과 해설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본문

편안할 때 지키기 쉽고, 조짐이 보이지 않을 때 도모하기 쉬우며, 여릴 때 잘라내기 쉽고, 미미할 때 분산시키기 쉽다. 아직 (무언가) 있지 않을 때 해야 하고, 아직 혼란스럽지 않을 때 다스려야 한다. 아름드리나무도 털끝 같은 싹에서 시작하고, 아홉 층에 이르는 누대도 한 줌 흙을 쌓아올려 지으며,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시작한다.

무언가 (애써) 하려다 보면 (오히려) 실패하고, 어디엔가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면 (오히려) 잃는다. 그리하여 현자는 무위로 하니 실패하지 않고, 너무 매달리지 않으니 잃지 않는다. 뭇사람이 어떤 일에 종사할 때에는 어떤 기미가 보일 때에 시작하기에 늘 실패하기 마련이다.

끝을 시작과 같이 조심스레 고려한다면(언제나 한결같다면) 무엇이든 실패할 일이 없다. 그리하여 현자 무욕(욕심 없음)에 따라 욕구할 뿐이고, 구하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돌같이 보며), 무학(不學, 배움 없음)으로 배우고자 하여, 뭇사람들의 과오를 복구시키려 할 뿐이다. 이렇게 하여 세상 모든 것이 자연스러움(본성)을 회복하도록 도와줄 뿐, 결코 무언가를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원문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 則無敗事. 是以聖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해설


시작과 맺음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이 도덕경에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64장이다. 한편으로,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것에서 시작하고, 세상의 큰 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는 63장을 다른 어감으로 서술한 느낌이기도 하다. 63장에서는 ‘출발’을 강조한 느낌이라면 64장에서는 ‘맺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조짐을 보이기 전에 도모하고, 혼란스럽기 전에 다스려야 하는 것처럼, 사소한 문제가 큰 문제를 만들고 미세한 균열이 붕괴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조심조심, 끝과 시작을 한결같이, 담담하고 잠잠하게 가야 문제가 발생하질 않는다. 그리하여 노자는 시작과 마찬가지로 끝을 잘 둘러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개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방심하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도가, 비워서 채우는 삶의 미학 [책 소개]
노자와 장자를 중심으로 한 도가의 생각을 현대와의 접점에서 간결하게 풀어쓴 책이다. 도가의 생각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그 내용을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노자와 장자는 도가의 창시자이고 도가란 ‘도’를 통해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고 ‘도’에 따라 삶을 살고자 하는 학파를 의미한다.

미리 준비하고 미리 대비하다

현자는 미리 준비하고 대비한다. 이 점이 뭇사람들과 다른 점이다. 뭇사람들은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기보다는 조짐이 보일 때, 다시 말해, 눈에 보일 때가 되어서야 움직인다. 그마저도 일이 커져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그것은 대개 게으름에서 비롯되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쉽고 편해 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또 문제, 무언가를 애쓰면 실패를 가져오고 지나치게 매달리면 잃게 만든다. 오히려 실패할지 모른다는 마음, 잃어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임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와 마주하기도 한다. 다만, 그 결과가 순전히 자기 능력이라 여기거나 그 결과에 도취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현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에 조치를 취하고 기본을 다져 두어, 위기가 닥칠 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현자는 무위로 이루고 집착하지 않기에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원하는 것에 이를 수 있다. 이는 3장에서 보았듯이 배와 뼈를 위해야 한다는, 다시 말해, 근본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결대로 살아가기

그리하여 현자는 욕심이 없는 것에 욕심을 내고, 금은보화를 돌같이 보며, 배웠어도 배운 티를 내지 않는다. 무언가를 탐하는 마음이 없으니 자기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에 관심이 없고 이기적이지 않다. 몸에 좋은 것들은 대개 맛이 없거나 맛 자체가 없어 사람들이 탐내지 않는다. 현자는 그런 것들로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물질적 욕망이 없으니 부정부패가 없다.

그리고 너 잘 나고 나 잘난 게 없다.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니 배움 없이 배운다. 여기에서의 배움은 단지 학습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식의 차등’을 의미한다. 그것은 지배와 피지배를 나누는 기준이기도 하다. 과거 글자를 아는 계급은 지배층이었고 그들이 문자를 모르는 계급을 지배했다. 노자가 유가와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이처럼 노자는 무언가에 개입하거나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잘났다고 위에 서서 모두를 지배하려 하거나, 남을 굴복시키려 하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은 지배욕이다. 현자는 지배욕이 없다. 현자의 최종 목표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가진 자연스러움의 회복에 있다. 자연스러움이란 곧 본성이자 본질이다. 곧 각자가 각자가 지닌 결대로 사는 일.


노자 도덕경 완역(1-81장) 모음
와 풍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 인간 세상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것. 그렇지만 단 한 번도 골고루 나누어진 적 없던 것. 불평등의 근원이자 갈등의 시초. 그래서 노자는 말한다. 욕심을 버리고 서로 빼앗고자 다투지 말며 서로를 보듬어주고 안아주라고. 이미 이 세상은 부와 풍요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니, 제발 그만하라고. 멈추라고. 이것이 노자의 메시지이자 도덕경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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