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우상 - 다시 생각하다 4

'시장의 우상(idola fori)'이란 인간의 언어가 가진 불완전함에 기대어 지식을 형성하는 우상을 가리킨다. 생각해보면 언어의 오류는 고스란히 인식의 오류로 이어진다.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16~17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베이컨이 제시한 네 가지 우상 중 세 번째인 '시장의 우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시장의 우상 - 다시 생각하다 4
시장의 우상 - 다시 생각하다 4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위한 사색과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생각하는 인간을 향해 나아가 보자.

과학적으로 세계를 파악하여 올바른 지식을 형성하려 했던 베이컨은 '인간의 잘못된 인식'이 가장 큰 방해물이라고 보았다. 이를 우상(idola)이라고 명명했는데, '우상'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베이컨은 인식의 오류가 종교적 맹목성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듯,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그릇된 믿음을 의심 없이 따른다는 것이다. '우상'이란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을 가리키며,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대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상 언어가 가진 문제

16~17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베이컨이 제시한 네 가지 우상 중 동글의 우상에 이어 베이컨이 말한 세 번째 우상인 '시장의 우상'에 대해 생각해 보자. '시장의 우상(idola fori)'이란 인간의 언어가 가진 불완전함에 기대어 지식을 형성하는 우상을 가리킨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은 정확하고 세심하기보다는, 대다수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학문적이거나 문학적이지 않아도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바로 그 편리함이 문제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일상 언어는 피상적이어서 깊은 의미를 담기 어렵고, 사람에 따라 제각각 오용되기 쉽기 때문이다.

베이컨은 언어가 인식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하나는 명칭만 있고 실재하지 않는 것들을 있는 양 상정하는 일이다. '불의 원소'처럼 단지 상상에 지나지 않는 것에 이름을 붙여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가정하는 경우가 그렇다. 만화나 영화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만, 과학적 지식을 탐구하고자 했던 베이컨에게는 결코 용납하기 어려운 태도였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재하기는 해도 잘못 추상하거나 불충분하게 정의 내린 것들이다. 이를테면 '습한 것'을 두고 다른 물체로 확산하는 성질을 갖는다거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는다고 추론하는 식이다. 어찌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개념을 엄밀하게 규정하지 않은 채 논의를 이어가다 보면 지식의 토대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인간의 언어에는 이처럼 크고 작은 왜곡과 오류가 여러 겹으로 잠재해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언어의 오류는 고스란히 인식의 오류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대개 평소 익숙한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언어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생각을 이어 나간다. 생각이 꼬리를 물듯 언어도 그러해서, 어떤 언어로 다음 생각을 있느냐에 따라 사고의 깊이와 방향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들만 사용하다 보면 생각은 자연스럽게 상식의 선 위에 머물게 된다. 물론 상식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상식이 하향 평준화될 때가 문제이다. 상식의 수준도 언어와 함께 높아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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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며 잠드는 방송’ 나른하니즘입니다. 6화의 주제는 ‘니체에서 헤르만 헤세로 - 망치에서 알로’ 입니다. 기존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구 주장한 두 사람, 니체와 헤르만 헤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시장에서 소문이 퍼지는 이유

'시장'이라는 공간을 떠올려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시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고, 별다른 준비 없이 아무 이야기나 나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관적인 믿음을 객관적인 사실로 여겨도, 거짓을 진실인 양 떠벌려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흥정이 오가는 곳에는 어느 정도의 과장과 속임수가 끼어들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이를 탓하기보다 그 분위기를 인정하며 즐기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소문은 쉽게 퍼진다. 언어가 애매모호하니 하나의 이야기가 수없이 다른 형태로 왜곡되고, 거짓된 사실조차 참으로 믿어버리는 일이 생긴다. 남을 이용하기 위해 믿게 만들거나, 스스로를 기만하기 위해 믿고 싶은 대로 믿기도 한다. 그렇게 '그럴듯한 것'이 어느새 '그러한 것'이 되고, '그렇다 하던데'가 슬그머니 '그런 것'으로 둔갑한다.

이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 정치인이나 사기꾼들이다. 베이컨이 논한 언어의 오류는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그 구조적 취약성이 의도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어를 조작하거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특정 단어를 앞세우는 일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없는 것에 이름을 붙여 있다고 여기게 만들고, 검증되지 않은 추론을 기정사실처럼 유통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은 다르다. 꼼꼼히 분석하고 찬찬히 탐구하며 냉정하게 비판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언어의 사용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과 언어를 조심스럽게 검토해 나갈 때, 비로소 더 체계적이고 함축적인 사고로 나아갈 수 있다. 연륜 있는 학자의 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결국 그가 수천 수만 번 자신의 생각과 언어를 다듬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시장의 우상을 극복한다는 것은, 언어를 엄밀하게 다루고 그 위에 세워진 생각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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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우상 - 다시 생각하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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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근 DAEGEU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