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우상 - 다시 생각하다 5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이란 한마디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지식들을 가리킨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과학이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한 베이컨 당시에 사람들이 가졌던 '지식'이라는 것은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16~17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베이컨이 제시한 네 가지 우상 중 네 번째인 '극장의 우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위한 사색과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생각하는 인간을 향해 나아가 보자.
과학적으로 세계를 파악하여 올바른 지식을 형성하려 했던 베이컨은 '인간의 잘못된 인식'이 가장 큰 방해물이라고 보았다. 이를 우상(idola)이라고 명명했는데, '우상'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베이컨은 인식의 오류가 종교적 맹목성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듯,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그릇된 믿음을 의심 없이 따른다는 것이다. '우상'이란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을 가리키며,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대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극장의 우상과 검증되지 않은 지식들
16~17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베이컨이 제시한 네 가지 우상 중 네 번째인 '극장의 우상'에 대해 알아보자.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이란 한마디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지식들을 가리킨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과학이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한 베이컨 당시에 사람들이 가졌던 '지식'이라는 것은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예로 들어 보자. '천동설'은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자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된 이론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의 중심이어야 교회도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를 통해 당시 유럽 사회를 통제할 수 있었다.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 재판을 받은 갈릴레이도 베이컨보다 조금 늦게 태어난 사람이다.
그 연원도 알지 못한 채 오래전부터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극장의 우상'이 가진 특징이다. 실제적 근거 없이 극적으로 구상된 세계관을 담은 철학적 논문들, 혹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그럴싸한 과학의 원리와 수학적 공리 등이 난무하면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없다.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전통이나 관습, 무비판적으로 공유되는 사회적 가치들, 또는 종교적 교리들도 마찬가지이다.
베이컨의 의도는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근거가 무엇인지 따져 묻고 합리적인 믿음인지 한 번 즈음 검증해 보자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전통이나 관습을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것들을 거부하고 현재 상황에 맞지 않는 것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데 있다.
'극장'이라는 이름은 극장에서 벌어지는 연극적 요소들에서 비롯된 비유이다. 극장 자체가 이미 가상의 공간이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연극 역시 가상의 상황임에도, 이를 실제인 양 희노애락을 느끼며 감상에 젖어드는 것이 인간이다. 베이컨은 이러한 가상과 감정의 요소들을 인간의 맹목성에 빗대어 '극장의 우상'으로 이름 붙였다. 비록 가짜라도 믿고 싶다면 진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믿음과 틀렸을지 모른다는 믿음
맹목적인 믿음이 가져오는 부작용은 우리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가짜 뉴스'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인 현상이다. 가짜 뉴스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가짜 뉴스를 진짜로 믿고 이에 근거해 행동한다면 사회는 더욱 혼란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를 이용하여 사회를 분열시키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의 견해나 특정 기관의 입장이 맹목적으로 지지되면 그들의 입지가 절대화되어, 비판조차 용인되지 않는 경직된 사회가 된다. 이른바 '열린 사회'가 아니라 '닫힌 사회'로 굳어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끼리, 서로 다른 학설을 지지하는 사람끼리, 서로 다른 관습을 지닌 사람끼리 다투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그저 의견이나 취향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극장의 우상'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권위에의 호소 오류'와 맥락을 같이한다. '권위에의 호소 오류'란 어떤 권위 있는 대상에 대한 맹신이나 무비판적 수용을 의미한다. "그 학자가 그랬대" 또는 "텔레비전에 나왔대"라며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나 매체의 보도를 아무런 검토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권위'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나의 믿음과 상반되는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부정하고, 나의 믿음과 관련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신봉한다. 그래서 비판의 틈조차 없고 개선의 여지도 없다. '우상'의 문제는 우상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든 우상을 스스로 신봉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간파해야 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믿는 '것'의 내용보다, '내'가 그것을 믿기에 벌어지는 현상에 있다. 왜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기가 그토록 힘든 것일까. 아마도 '내'가 틀렸고, 실패했고, 패배했음을 인정하기 싫어서일지도 모른다. 틀렸다고 해서 패배는 아니고,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또 하나의 믿음이 필요하다. 내가 믿는 것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믿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