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서 역사로, 문자가 된 영웅들의 이야기 [위대한 발자국 9]
기원전 2000년경 크레타섬에서 발흥한 미노아 문명과 그 뒤를 이은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200년을 전후해 갑작스러운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기원전 800년경까지 이곳에는 이렇다 할 문명이 나타나지 않는 암흑기가 지속되었으나, 이 시기를 지나며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위대한 서사시의 등장과 함께 그리스 문명은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합니다.
기원전 2000년경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강력한 해군과 무역을 바탕으로 번성한 미노아(미노스) 문명, 그리고 그보다 늦은 기원전 17~16세기경 그리스 본토 펠로폰네소스반도 아르골리스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미케네 문명은 각각 에게해 청동기 문명의 두 축을 이루었습니다. 상업 중심의 평화로웠던 미노아와 달리 호전적이었던 미케네인들은 이후 크레타의 크노소스를 정복하며 미노아 문명의 영역까지 세력을 넓혔습니다.
암흑시대의 도래
하지만 이 영광스러운 청동기 세계는 기원전 1200년을 전후해 갑작스러운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전통적으로는 북방에서 내려온 도리아인의 침입이 결정타로 지목되어 왔으나, 최근 학계에서는 이를 증명할 고고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대신 기후 변화로 인한 대기근, 연쇄적인 지진, 동지중해 국제 무역망의 붕괴, 그리고 각 왕국 내부의 사회적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시스템 붕괴(System Collapse)’로 이 시기를 설명하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대대적인 파국 이후, 고도의 문명과 문자가 모두 사라지고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등장하는 기원전 800년경까지 호흡이 끊긴 긴 기간을 우리는 ‘암흑시대(Dark Age)’라 부릅니다.
암흑시대의 장막을 걷고 등장한 영웅들의 노래
이 길고 어두운 암흑시대가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호메로스의 서사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등장합니다. 두 작품은 화려했던 청동기 미케네의 단편적인 기억과 어두운 암흑시대 말기의 사회상이 절묘하게 융합되어 있어, 이 시기를 ‘호메로스 시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비록 ‘호메로스’라는 인물이 정말 이 두 작품을 혼자 저술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구전되던 이야기가 대략 기원전 8세기 후반(기원전 800년 전후)에 마침내 문자로 기록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추정입니다. 물론 문자로 고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영웅들의 이야기는 광대(아오이도이)들의 낭송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이 서사시들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주로 귀족 출신의 엘리트 집단입니다. 평민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시 그리스 사회가 철저히 귀족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에서 보듯 귀족 가문 간의 대립이 곧 전쟁으로 치닫기도 하고, 그들 사이의 유대 관계가 사회의 핵심 축을 이루었습니다. 이 시기 유행한 ‘영웅 숭배’ 역시 유력 귀족 가문이 자신들의 지배 정통성을 과시하고, 그 가문이 다스리는 지역의 결속을 도모하기 위해 신화적 영웅과 가문의 뿌리를 결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격변하는 그리스 사회와 ‘문자화’의 정치학
그런데 기원전 800년을 전후하여 그리스 사회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페니키아 문자를 도입해 배우기 쉬운 ‘그리스 알파벳’으로 개량했고, 에게해 전역에서 상업 활동과 무역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부의 증가와 맞물려 인구가 급증했으며, 그리스의 독특한 정치·생활 공동체인 ‘폴리스(Polis)’가 흥기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이러한 격변 속에서 기존의 귀족 중심 그리스는 신흥 세력과 평민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사회로 서서히 재편되기 시작했습니다.
말로 통한 낭송으로만 구전되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이 시기에 하필 ‘문자’로 기록된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무역의 발달과 폴리스의 흥기로 사회가 격변하자, 기존의 귀족 계급은 신흥 세력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며 기득권의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이에 귀족들은 서사시 속 위대한 영웅들을 자신들의 조상과 연결 지음으로써, 자신들이 누려온 지배 특권을 영속화하고 정당화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일리아스⟫의 문자화는 위기에 직면한 귀족들이 정체성을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 의도와, 폴리스의 탄생이라는 격변기 속에서 분열되어 있던 그리스인들이 ‘하나의 공통된 문화적 뿌리’를 확인하고 연대하려 했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 맞물려 탄생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여기에 그리스 알파벳이라는 기술적 혁신이 더해지면서, 대서사시는 구전의 한계를 넘어 마침내 인류 역사에 불멸의 문학 작품으로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