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와 의심 - 다시 생각하다 6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흥미로운 참조점이 된다. 방법적 회의란, 자기 인식의 불확실성을 걷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의심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목표는 단순히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참된 인식에 닿는 것이다. 근거 없는 믿음을 하나씩 덜어내고, 흔들리지 않는 인식의 토대를 마련한 뒤, 그 위에 지식을 쌓아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위한 사색과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생각하는 인간을 향해 나아가 보자.
일단 믿으면, 의심하지 않는 사람
인간은 대체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처음엔 믿고, 그 다음엔 생각하고, 이어서 검증하고 나면, 이를 확고한 기준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책에서 읽고, 삶에서 느끼고, 경험으로 얻고,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오랫동안 적용하고 수정해오다 보니, 굳이 의심할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자기의 믿음이 충분히 객관적이고, 누구에게나 통할 만큼 보편적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생각했다기보다 그냥 믿어온 것들이 꽤 많다. 사실 '생각'과 '믿음'은 생각보다 혼동하기 쉽다. '난 이렇게 생각해.'라는 말을 '난 이렇게 믿어.'로 바꿔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난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해.'를 '난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믿어.'로 바꿔보는 것이다. '노력하면 된다'거나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배웠고, 깨달았고, 알았다고 여긴 것들이 사실은 믿음에 가까웠을 수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생각'이라고 불러온 것들이, 사실은 어느 순간 굳어버린 믿음이었을 가능성에 대해 돌아보아야 한다. 이 믿음과는 종교적 믿음과는 다르지만 그 강도는 의외로 종교적 믿음에 견줄 만하다. 내가 생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그냥 믿음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믿음이 제대로 된 생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믿음을 하나하나 회의해보는 수밖에 없다. 진정한 의미의 '생각'에는 비판, 판단, 평가라는 정신 활동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 내가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스스로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을 때, 그 믿음은 비로소 살아있는 지식으로 바뀔 수 있다. 지금의 믿음을 그대로 이어가도 되는지, 그것이 나만의 편향은 아닌지, 한 번쯤 솔직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흥미로운 참조점이 된다. 방법적 회의란, 자기 인식의 불확실성을 걷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의심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목표는 단순히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참된 인식에 닿는 것이다. 근거 없는 믿음을 하나씩 덜어내고, 흔들리지 않는 인식의 토대를 마련한 뒤, 그 위에 지식을 쌓아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는 바로 이런 과정 끝에서 나온 말이다. 데카르트는 권위에 기대거나 관습을 따르거나 느낌에 의존하는 태도를 모두 내려놓고, 오직 스스로의 생각을 통해 얻은 인식만을 믿으려 했다. 그의 회의는 수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계산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이유로 수학마저 의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의심해 나간 끝에, 데카르트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나'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데카르트의 이야기가 17세기의 철학사로만 읽힐 수도 있지만, 그 핵심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한 번쯤 의심해볼 용기, 그것이 방법적 회의가 오늘날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이다.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그런 과정이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물음표를 달고, 현상의 원리를 파고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설명해보는 것이다. 자기만의 생각을 갖는다는 것, 세상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이해를 갖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천, 수만 번 회의하고, 수천, 수만 번 적용해보는 과정 없이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자기 생각의 벽에 작은 균열을 내기
더 깊고 단단한 사고를 원한다면, 그만큼의 반성과 훈련이 필요하다. 자기가 생각이 아니라 그냥 믿어왔다는 사실이 처음엔 좀 당혹스러울 수 있다. 자기 생각을 스스로 비판하고 평가하는 일도 솔직히 번거롭게 느껴진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이미 답을 갖고 있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내가 옳다는 확신, 내가 충분히 생각했다는 감각이 오히려 더 깊은 사고를 막는 벽이 되기도 한다.
회의한다는 것은 그 벽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이다. 회의의 습관이 쌓이다 보면, 생각의 힘도 조금씩 자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 안에서 나누는 대화도 조금 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그런 과정의 결과물이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물음표를 달고, 현상의 원리를 파고들고,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설명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생각을 갖는다는 것, 세상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이해를 갖는다는 것은 수없이 많이 깨지고 부서지는 과정 속에서 얻어진다. 나의 믿음이 언젠가는 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 자기 생각을 스스로 비판하고 평가하는 습관, 그런 것들이 나의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고, 나의 생각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준다.
생각의 힘은 그렇게 자라난다.






